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편집국에서] 정치 셈법에만 골몰하는 금융당국

입력
2014.12.16 18:57
0 0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10월엔 사상 최대였고, 지난 달에도 흐름은 비슷했다. 큰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준금리 인하고, 다른 하나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및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다. 더 싼 금리에, 더 많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니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원인이 두 가지면 해법도 두 가지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아서 추가로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판을 치는 마당에 금리를 되돌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은 LTVㆍDTI를 비롯한 대출규제를 다시 조이는 것뿐이다. 민간에서는 물론이고 국회 입법조사처, 그리고 국책연구기관까지 나서서 그런 의견을 내놓는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선제적으로 나서서 팔을 걷어 부쳐야 하는 금융당국은 계속 뒷짐만 지고 있다. 기껏 취한 조치가 상호금융에 대한 미세한 대출 관리가 전부다. 그러면서 규제 완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며 돈을 더 빌려도 좋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니 금융당국이 금융 건전성은 뒷전에 제쳐둔 채 실세 부총리가 버티고 있는 기획재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LTVㆍDTI 완화는 없다”던 금융당국이 입장을 180도 바꿔 지난 8월 완화에 나서도록 한 건 “부동산 규제가 겨울에 여름 옷을 입는 격”이라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 한 마디였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대신 요즘 금융당국이 과잉 의욕을 보이는 건 기술금융이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기술을 평가해서 담보 없이 대출을 해주는 건데, 인터넷에 상황판까지 설치해놓고 매달 은행 별 취급 실적을 공개한다. 실적을 평가해서 은행장과 임원들의 성과 보수에 반영하겠다고 하니 은행들로선 좋든 싫든 적극 매달릴 수밖에 없다. 4개월 전 2,000억원에도 못 미쳤던 기술금융 실적은 지난달 말 6조원에 육박했다.

기술력 있는 기업에 자금을 대주자는 취지 자체야 나무랄 데 없지만, 취지가 좋다고 모든 것이 다 용납되는 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무리한 자원개발이 지금 이 정부에서 후폭풍을 맞고 있는 게 비근한 예다. 실적 채우기에 급급해 기술금융을 무턱대고 늘렸다가는 언젠가 반드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누구나 안다. 대한민국 엘리트들이 집결해 있는 금융당국만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건 박근혜 대통령이 기술금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단 한 가지 이유 외엔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LIG손해보험 인수 승인이라는 아주 얄궂은 무기를 들이대며 KB금융을 줄기차게 압박하는 금융당국의 행태에서도 오직 정치적인 셈법만 읽힌다. KB금융 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외이사들이 물러나야 하고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하는 건 백 번 옳다. 그렇다고 그것이 KB금융이 LIG손보를 인수하는 것과 무슨 대단한 연관이 있는 건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조그만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도 아니고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가 보험사를 인수하겠다는 건데 금융당국이 마냥 승인을 미루는 건 월권 행위에 가깝다. 그러는 사이 KB금융은 매일 꼬박꼬박 1억원이 넘는 지연이자를 물고 있고, LIG손보 임직원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금융당국이 외려 금융 리스크만 키우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 인수를 승인해 주겠다는 건지 명쾌한 답을 내놓지도 않는다. 그저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이(혹은 윗선이) 밀었던 인사를 회장 선임에서 탈락시킨 데 대한 괘씸죄 적용이라는 게, 그래서 KB금융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는 게 단지 의혹만은 아닐 거라고 믿게 되는 이유다.

금융당국이 본업(금융감독)을 등한시하고 부업(정치적인 계산)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금융이 멀쩡할 리 없다. 대형 금융사고가 끊이질 않는 게, 금융이 후진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단지 금융기관들 탓만은 아닐 테다. 지금 금융당국의 수준이 곧 한국 금융의 수준이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